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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다의 ‘시선을 담아서’

방송인 겸 모델 비다의 뷰티라이프 스토리

김희영 기자 2020.08.12

김희영 기자

2020.08.12
비다/사진=서정준 객원기자 비다/사진=서정준 객원기자

첫 인터뷰의 설렘을 안고 라이킷 스튜디오에 찾아온 24살 비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낯선 한국에서 그 누구보다 한국살이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비다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그를 한국으로 오게 만들었다. 난민에서 한국에 오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비다는 여러 경험을 통해 서서히 성장하는 방법을 배웠다.


한국의 좋은 것들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포부에서 한국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비다가 바라보는 한국은 어떤 곳일까. 아직은 서툴지만 조금씩 자신만의 아우라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방송인 겸 모델 비다의 인터뷰 스토리를 공개한다.


비다/사진=서정준 객원기자 비다/사진=서정준 객원기자

Q.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미국이다. 난민에서 미국 국민이 되기까지 여러 일들을 겪었을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이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 부모님은 가족들이 함께 살기에 적합한 곳을 계속 찾았다. 마침 러시아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어 그곳으로 이민을 가게 됐다. 러시아에서는 8년 정도 살았다. 근데 당시 경제가 어려워 러시아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더라. 그래서 또 다른 나라인 우크라이나로 옮겨 잠시 살았다. 이후 부모님은 미국에 난민 신청을 했고, 미국은 우리 가족을 받아줬다. 지금은 시민권까지 받아서 미국 국민이 된 상태.


당시 저는 어렸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크게 없었다. 힘든 것보다는 신기하고 즐거운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다양한 나라에 가서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귀는 게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10살 정도 됐을 때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하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돈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 참 막막하셨다고. 지금은 가족들이 미국에 정착해 잘 지내고 있다.


Q.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느껴봤나?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많지 않지만, 15살에 다시 갔을 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엄마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 잠시 가게 됐다. 엄마는 워낙 어릴 때 왔던 터라 아프가니스탄 문화를 조금이라도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 저를 데려갔다고 했다.


한 달 정도 머물렀는데 솔직히 이 나라처럼 무서운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다닐 때마다 왜 여자가 밖에 돌아다니냐는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편의점에 가더라도 남자 가족이 함께 동행해야 했다. 혼자 절대 돌아다닐 수 없는 곳이었다. 집 앞 편의점을 가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혼자 갈 수 없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그곳은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은 대부분 검은색 옷만 입는다. 하지만 노란색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을 당해야만 했다. 문화를 배우러 갔지만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 거의 집에만 있었던 것 같다.


Q.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건가?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14살 때 우연히 TV에서 하는 한국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미국에 갔을 때 그렇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한국의 카페, 게임 등의 문화가 담긴 다큐멘터리가 정말 재밌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인터넷으로 한국에 대한 것들을 검색하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한국에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저는 너무 어렸고 돈도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찾게 됐다. 장학금도 받으면서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올 수 있었다.


Q.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땠는지?


-미국에 교환학생 왔던 한국 친구가 인천공항으로 데리러 왔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식으로 먹어야 한다며 홍대로 데려갔다.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자마자 먹은 음식이 닭발과 소주였다. 상상도 못한 조합이었다.(웃음) 이 첫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Q. 한국 문화는 미국과는 또다른 느낌일 것. 생활하면서 신기했던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하철이 정말 신기했다. 지하철을 타고 빨리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더라. 근데 익숙하지 않은 탓에 늘 반대로 타서 고생 아닌 고생을 했다. 또 미국과의 시차가 있다 보니 밤에 잠을 이루기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밖에 나갔는데 가게들이 문을 닫지 않고 운영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미국 편의점 밥보다 한국 편의점 밥이 정말 맛있더라. 드럭스토어도 신기한 것 중 하나였다. 미국은 슈퍼마켓 안에 모두 다 같이 있는 형태인데 뷰티 제품만 모여 있는 가게가 따로 있어서 새롭게 느껴졌다.


비다/사진=서정준 객원기자 비다/사진=서정준 객원기자

Q. 모델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모델이라 하면 키도 크고 시크한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제가 모델 일을 할 줄이야.(웃음) 개인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같이 사진 작업을 해보자고 연락이 오더라. 새로운 도전이라 생각하고 작업에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포즈도 굉장히 못했다. 요즘처럼 자연스러운 포즈가 아닌 과한 포즈를 취했었다.(웃음) 어색한데 촬영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이후 친구가 소속된 회사를 통해 본격적인 모델 활동과 방송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일이 많지 않아서 20만원으로 생활을 했다. 돈보다는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행복한 거구나 느끼게 되더라. 그렇게 서서히 제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의 일을 넓혀가게 된 것 같다. 성장하고 있는 비다라고 말하고 싶다!(웃음)


Q. 예전에도 지금처럼 패션과 뷰티에 관심이 많았는지.


-뷰티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K-뷰티를 좋아했는데, 한국 화장품이 좋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고 있는 곳에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아서 접할 길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18살 때부터 인터넷 구매를 할 수 있게 돼 아마존에 가입해서 처음으로 한국 화장품을 구매하게 됐다. 첫 화장품은 비비크림.(웃음) 근데 밝은 19호를 사서 발랐더니 주위에서 다 쳐다보더라. 저는 피부가 좋아 보여서 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목과 얼굴 톤이 달라서 쳐다본 것이었다.(웃음) 잊지 못할 추억이다.


Q. 모델 활동과 ‘대한외국인’ 출연 중이라 바쁘게 지낼 것 같다. 한국살이 어떤가?


-한국에 올 때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냥 학교생활 1년 정도만 하고 미국에 돌아가서 대학원에 갈 생각이었다. 근데 한국에 와서 제 인생이 바뀌었다. 성격도 많이 변하고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한국은 제게 영화 같은 삶을 준 것 같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다양한 일을 해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재미있게 하다 보니까 일도 차츰 늘고 있는 것 같다. ‘대한외국인’을 포함해 ‘너의 목소리가 보여’ 촬영도 기억에 남는 방송 출연이었다.


Q.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비다TV’를 시작했다. 어떤 콘텐츠를 선보이는지?


-다른 유튜브 채널에 몇 번 출연을 하게 됐는데 반응이 좋았다.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저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었지만 막상 어떤 콘텐츠를 해야 될지 고민이 됐다. 기술적인 부분도 부족한 것이 많았던 터라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유튜브를 할 수 있게 됐다. 일상은 물론 패션, 뷰티에 대해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도 고민이 참 많다.


Q. 요즘 비다의 뷰티 관심 분야는 무엇인가.


-한국은 참 새로운 것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다양한 기능을 가진 제품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써보고 있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는 편이다. 요즘에는 피부 톤이 약간 어둡다 보니 톤업 크림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


Q. 비다의 뷰티 꿀팁이 있다면?


-눈 밑 애교살 포인트 메이크업을 즐겨 하고 있다. 어두운 브라운 컬러로 베이스를 먼저 발라준 후 밝은 아이섀도우를 그 위에 발라준다. 마지막에 글리터로 포인트를 주면 좀 더 살아있는 눈매를 연출할 수 있다.


Q. 비다에게 꿈이 있다면?


-한국은 저에게 많은 것을 준 나라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했으며 제 자신을 변화시킨 곳이다. 그래서 매우 고맙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문화와 좋은 것들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제가 더 많이 노력해야 될 것 같다!(웃음)



김희영 기자 hoo0443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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