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취재기자부터 광고 기획 피디, KBS ‘인간극장’ 막내 작가까지 치열한 삶 속에서 글과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왔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쌓일수록 자신만의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은 그를 더욱 목마르게 했다. 서른 살 나이에 비로소 온전히 자기만의 글을 쓰게 된 고수리 작가는 어느새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선사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고수리 작가는 2015년 카카오 브런치에서 진행한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금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에세이 작가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등 3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탄탄한 독자층을 보유한 에세이스트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창비학당과 세종사이버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동아일보 칼럼 ‘관계의 재발견’과 네이버 프리미엄 채널 ‘마음쓰는밤’을 연재하고 있다. 또한 219만명이 넘는 유튜브 애니메이션 채널 ‘토닥토닥 꼬모’의 시나리오를 맡고 있으며 다양한 글 작업을 하는 다재다능 프리 워커로 활약 중이다.
평범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고수리 작가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가 쓴 글을 읽으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장면이 펼쳐지며 뜨끈한 뭉클함이 가슴을 울린다. 지나가는 하루라고 생각했던 일상이 글을 통해 한편의 드라마로 완성된다.
고수리 작가는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라고 이야기한다. 자기표현의 수단이 된 SNS를 통해 꼭 글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MZ세대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연재 인터뷰에서 처음 만난 사람, 고수리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가님 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글 쓰고 가르치는 고수리 작가라고 합니다. 요즘에 이렇게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에세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글을 쓰기도 하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데 전문성을 가지게 되어서 그렇게 설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수리수리 고수리’라고 소개하면 더 많이 좋아해 주세요.(웃음)
글쓰기 수업이나 독서 모임처럼 독자와 더 가까이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에 일단 분위기를 좀 다정하게 바꾸기 위해서 ‘수리수리 고수리입니다’라고 소개해요. 그럼 긴장된 분위기가 무장 해제돼서 모두들 자기 얘기를 하나둘 꺼내시거든요. 실은 KBS ‘인간극장’ 작가로 일할 때부터 쓰던 소개인데요. 모두를 웃게 만들어서 아직도 자주 쓰고 있어요.
작가님 글에는 따뜻함이 묻어 있어요. 작가님을 따뜻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뭐랄까요. 돌아보면 저는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유년과 청춘까지 내내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어려웠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게 씩씩하게 잘 살아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어렵더라도 긍정적인 마음 같은 작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글을 쓰면서 그런 작은 희망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글을 쓰고부터 저는 많이 달라졌어요. 완전 난로 인간이 됐죠! (웃음)
글을 쓰기 전에는 좀 냉소적이고 회의적이었어요. 우울한 면도 많았고요. 하지만 제 이야기를 쓰게 되면서 슬프고 아팠던 일, 힘들고 억울했던 일들과 좀 거리를 두고 3인칭 시점에서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살아온 이야기와 내면의 이야기, 생각들이 정리되고 정돈되어서 손끝을 통해 언어로 표현되는 거라서 그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 하게 되거든요. 스스로를 조금 더 지켜보면서 거리 두고 보는 게 가능해져요. 당시에 화나고 슬펐던 일도 글을 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잘 지나왔네’라고 생각하게 돼요. 뭔가 조금 더 괜찮은 내가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의 나를 보면서 3인칭 시점에서 글을 쓰다 보니 조금 더 담백하고 담담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려고 노력도 많이 했었고요. 그런 면이 독자들에게 따스함으로 느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일상에서 평범하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담백하게 담아내는 것 같아요.
공개적으로 제 글을 처음 썼던 게 2015년 7월 3일이에요. 그전에는 블로그나 개인 홈피에서 쓰긴 했는데 이름을 공개하고 썼던 건 아니었거든요. 처음 글을 쓸 때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썼어요. 무언가 알려야겠다, 교훈을 줘야겠다 보다는 어떻게든 내 이야기를 여기 좀 털어놓자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당장 글로 쓰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다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거였거든요. 그때는 제가 쓰는 글의 장르가 에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첫 책을 내게 될 때 알게 됐죠. 제가 쓴 글들이 ‘에세이로 분류가 되는구나!’라고. 그런데 사실 글이라는 게 장르를 구분 짓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결국 내가 겪었던 일들을 재구성하는 작업이거든요. 에세이 쓰기에 관한 편견들. 에세이는 솔직해야만 된다, 사실만 적어야 된다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자유롭게 나의 이야기를 나답게 쓰면 돼요. 저는 제 이야기를 저답게 쓰고 있고요. 계속 그렇게 쓰다 보니 결국 제 글톤이 되었어요. 최근에 책에서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라는 용어를 발견했는데, 저는 그 말이 에세이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겪었던 일을 나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창작물이 에세이이고, 그러다 보니 제 글이 좀 더 사실적이고 담백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건 늘 온 마음 다해 현상, 현실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지치거나 마음이 힘들 때 작가님은 무엇을 하시나요?
저도 물론 글 쓸 때 슬럼프 같은 게 올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계속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독자가 있잖아요. 독자에게 작가는 충분히 위로를 받아요. 전업 작가가 아닌 사람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부엌 식탁에 앉아서 글 쓰는 것을 키친 테이블 라이터(Kitchen Table Writer)라고 해요. 대부분 그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냥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쓰는 행위 자체에서 위로를 받고 조금 더 나아가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있다는 게 힘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들이 공감과 응원, 격려 등을 표현해 줄 때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가 생겼네’라고 느껴요. 그럼 더욱 기쁜 마음이 들어서 더 열심히 글 쓰고 싶어져요. 분명히 세상에는 이렇게 책도 많고 작가도 많은데 제 책을 봐주시는 거잖아요.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해주세요. 저와 비슷하게 살아온 누군가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제 글을 읽고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그 마음을 글로 표현해 준 것 같다고 하세요. 자신들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람들에게 그런 위로를 전해주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인 것 같아요. 그럴 때 가장 뿌듯하기도 하고요.

방송작가에서 에세이스트로 도전하기까지 계기가 있나요?
어떤 계기가 있었다고 하면 ‘한 사람의 지지’라고 말할 수 있어요. 스물 중반에 광고 회사 기획 피디로 일할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어요. 남편도 콘텐츠 영상 기획자였고, 제가 계속 글을 쓰고 싶어 하고 또 가능성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꿈보단 밥이었어요. 너무 가난해서 일단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어요. 그래서 작가라는 꿈은 접어두고 20대 내내 너무 열심히 일만 했었어요. 남편과 4년 연애하고 결혼했을 때, 딱 1년 동안은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하고 싶은 공부였던 아동 문학을 공부하면서 에세이를 쓰게 됐어요. 그때 제 나이가 딱 서른이었어요. 서른 살 1년 동안은 밥 말고 꿈. 딱 1년 동안을 돈이 아니라 꿈을 위해서 살아보았을 뿐인데 그게 진짜 이렇게 삶을 바꿔놨어요. 한 사람의 진심 어린 믿음과 지지가 있었기에 저는 도움받아 글쓰기를 도전해 볼 수 있었어요. 많이 고맙죠.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계속 들어주는 게 굉장한 에너지가 드는 일이고, 사실 그 일에 흥미가 있거나 자기만의 뭔가 동기가 없으면 지속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되게 재밌었거든요. 방송 작가를 하면서 제가 어디서도 만나지 못하는 일반인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특히 인간극장 할 때는 바닷가에서 어부이신 분들, 소금밭에서 일하시는 분들 등 그들의 삶을 콘텐츠로 만들었잖아요. 만들다 보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제 콘텐츠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었고 기회가 왔을 때 마음껏 글을 쓰게 됐어요.
작가님은 처음부터 글을 잘 쓰셨나요?
저는 근데 잘 썼어요. (웃음) 왜냐하면 초등학교 1학년 때 백일장에서 초등부 장원을 받아온 거예요. 너무 어려서 뭔지 몰랐는데 주변에서 글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어요. 근데 책 읽고 글 쓰는 건 제가 좋아해서 계속 해왔기 때문에 그냥 재밌는 일이었어요. 제 기준에 ‘잘 쓴다’라는 말은 ‘재밌어서 즐겁게 쓴다’라는 의미였어요. 게다가 글쓰기는 돈도 들지 않는 활동이란 말이에요. 돈이 없어도 재밌게 놀 수 있는 나만의 놀이였어요. 떠날 수 없지만, 나는 책과 글쓰기로 어디든 떠날 수 있는 거죠. (웃음) 중·고등학교 때는 팬픽을 엄청 열심히 썼어요. 작지만 개인 팬픽 방도 있었답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제가 작가라고 해서 학창 시절에 고전들만 읽었을 거라 생각하시겠지만 ‘카우보이 비밥’이랑 ‘바람의 검심’같은 만화랑, ‘세월의 돌’, ‘드래곤 라자’같은 판타지 소설에 빠져 살았어요. 그리고 밴드 자우림의 오랜 팬인데요. 자우림과 김윤아의 음악세계가 제 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계속하면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요. 역시 좋아하는 걸 할 때가 제일 재밌고 행복한 것 같아요.
당장 성과가 나오거나 금전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좋아하는 걸 계속한다면 10대, 20대 때 푹 빠져서 좋아했던 그 세계가 30대부터 그 이후의 삶을 확장시킨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냥 놀아라’가 아니라 ‘좋아하는 걸 가지고 놀아라’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어른이 되고 나면, 좋아하는 게 뭔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제가 글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지금까지 남들 부러울 것 없이 엘리트 코스를 다 밟아서 자기만의 직업도 생기고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조차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진짜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요즘에는 ‘난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소개해 줄 수 있는 것 자체가 자신이 가진 진짜 빛나는 능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에세이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사는 만큼 쓸 수 있어요. 경험하는 만큼 쓰게 됩니다. 딱 한 달이라도 좋으니까 어떠한 합리성이나 생산성을 신경 쓰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나를 딱 찾아서 거기에 집중하고 몰입해 보는 게 진짜 경험이 될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그걸 서른이 되어서야 알았지만요.
경험이 곧 책이 되는 에세이를 만듭니다. 첫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픈 말은 유려한 문장을 쓰는 사람의 책상 앞의 사유보다,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책상 밖의 경험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거예요. 심오한 문장보다 기본을 지키는 문장이면 충분해요. 일단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글감과 메시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과도 비슷하지요.
에세이는 내 삶의 의미화 작업, 에세이스트는 내 이름으로 글 쓰는 지면이 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반드시 공개적으로 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특히 지금 시대는 SNS도 개방되어 있고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내 글을 실을 지면을 내가 만들고 홍보할 수 있는 시대죠. 브런치, 인스타그램도 될 수도 있고요. 블로그도 되고요. 기본적으로 유튜브도 방송을 만드는 일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방송의 기본은 구성과 대본인데 글쓰기 능력이 있으면 어떻게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설계가 가능하죠.
글쓰기 능력이라는 게 비단 에세이를 쓰겠다, 소설을 쓰겠다 해서 문학 쪽만 생각할 게 아니라 조금 더 열어놓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에는 민들레 홀씨를 부는 것처럼 어디로 갈지 몰라요. 그러니까 공개된 곳에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준비를 하세요.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작가님 글에는 어떤 사건과 경험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글쓰기 주제는 어떻게 정하시나요?
사실 지금까지 썼던 두 권의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와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는 살아오면서 제가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썼기 때문에 어떤 기획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작가가 쓴 글들을 잘 구성하고 편집해 주는 편집자님이 계셔서 책으로 나올 수 있었지요. 그런데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책은 푸드 에세이로 제안이 왔었어요. 근데 제가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단 말이죠.(웃음) 엄마 이야기를 되게 오랫동안 써왔는데 책에 엄마가 달걀을 입힌 토스트 해 준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을 보고 제안이 왔어요. 고민을 했었죠. 내가 푸드 에세이라니! 그랬는데 필진들을 보니까 어떻게든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나에게 어떤 얘기가 있을까 해서 취재하듯 접근해 봤어요.
엄마랑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할머니가 해녀였던 사실, 우리가 바닷가에 살았던 것들이요. 알고 보니 할머니도 제주 4.3 사건을 겪으시고 피난 온 해녀였어요. 방송 작가 때 취재했던 경험을 살려 엄마에게 계속 질문을 했어요. 그대로 정리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말맛을 살려서 옮기고 전하려고 노력했어요. 구성 작가로 일했던 경험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기획된 책은 일관되고 단단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요. 기획도 해보고 관심이 있으면 인터뷰도 해보세요. 사람들은 누군가한테 질문을 던져본 기억이 별로 없단 말이에요. 근데 내가 누군가를 되게 궁금해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어떤 질문을 던져야 될까 고민하는 것 자체에서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와 깊이가 나오거든요. 누가 청탁하지 않아도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창작은 진짜 멋진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ai도 못하잖아요. 못하리라 믿어요. (웃음)
요즘 파이어족을 꿈꾸는 민지(MZ)들이 많잖아요. 글쓰기로 가능할까요? 무엇을 먼저 하는 게 좋을까요?
글쓰기로 파이어족이 될 수 있냐고 물어보시면 제 답은 ‘아니요’입니다.(웃음) 글쓰기는 생계의 영역보단 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삶의 영역이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을 쓰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니까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기획하고 계산하는 대로 항상 딱 떨어지는 정답이 나올 수는 없어요. 글쓰기는 꾸준히 이어가고 표현하는 삶의 도구라고 생각해요. 꾸준히 내 삶과 예술을 확장시키는 도구, 어느 시기의 나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도구지요. 돈을 벌 수 있다 없다, 단언할 순 없어요. 그러나 글쓰기는 인생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확장시켜 줍니다. 나라는 사람을 선명하게 만들지요.
한편 저는 글쓰기를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에세이스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에세이만 쓰는 것이 아니라 영상, 시나리오, 소설, 카피 라이팅, 큐레이팅 등등 여러 분야에 글쓰기로 기획하고 구성하는 작가예요. 지자체나 기관,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고요. 직업적인 수단으로 글쓰기를 이어가고 싶다면, 하나의 장르나 하나의 책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여러 가지 다양한 글쓰기에 도전해보길 바라요. 만일 내가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쓴다라는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책상 밖의 경험과 영감과 생계가 되는 본업을 이어가면서 틈틈이 글 쓰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SNS, 메일을 통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 같아요.
되게 많이 와요. 저는 브런치에서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서 정공법으로 작가가 된 사례라서 독자들이 더 가깝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쓰는 글 자체가 일상이나 삶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본인도 겪어봤던 일들이고 공감된다고 댓글이나 메시지, 메일로도 보내 주세요. 초반에는 모두 답변을 해드렸는데 이제 너무 바쁘다 보니까 다 회신드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라이킷을 누르거나 답글을 남기며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려고 노력해요. 독자와의 소통이 요즘 시대 작가한테는 정말로 필요한 부분이거든요.
특히 MZ세대들은 창작자와 적극적인 소통을 나눕니다. 책을 넘어서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고, 작가의 창작물을 지원하고, 질문이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다른 콘텐츠로 재생산하기도 해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소통해요. 그렇게 콘텐츠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향유하는 문화가 저는 정말 멋진 것 같아요. 그래서 글쓰기 수업을 할 때에도 뭔가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오는 분들도 많아요.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모습이 정말 멋지죠.
자기 글을 쓰기 위해 4년 차 작가가 새로운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했었죠. 그때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많이 두려웠어요. 그런데 두려움보다 간절함이 컸어요. 더 늦기 전에는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죠. 그때 제가 딱 서른이었어요. 서른에 일의 방향도 바꾸고 결혼도 했어요. 서른이라는 나이가 참 이상해요. 뭔가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되어야만 하는데, 그러면서도 완전히 달라지고 싶은 나이잖아요. 그래서 그때 결심을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서른 전후로 정말 많은 게 달라졌어요.
지금 시대에 제가 서른이었다면 사업을 구상하기도 하고 어떤 콘텐츠를 만들까 고민하면서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오랫동안 영상을 다루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저한테 가장 간절했던 건 글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서른이 되고 나면 너무 좋거든요. 거센 폭풍이 일다가 고요해진 것 같은 그 잠잠함과 담담함이 있어요. 나라는 사람을 나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고, 이제 나는 어른이야 단언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저는 서른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서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더 멀리 더 높이 가야 하는 나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으세요. 작가, 교수, 콘텐츠 구성, 카피 라이팅, 큐레이팅 등 비슷하지만 다르기도 하잖아요. 어떠세요?
기본적으로 저는 영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작가예요. 작가 이전에 스무 살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대학 방송국 PD, 영상취재기자, 광고 회사 기획PD로 일했고요. 심지어는 아르바이트조차 웨딩촬영을 하면서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뷰파인더 너머로 세상을 보고, 영상을 기획하고 편집하면서 만들어 왔어요. PD 일을 그만두고도 방송작가로 일했으니까. 영상적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지요. 그래서 제 글도 영상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기획 PD로 일하던 회사에선 스마트미디어 사업부, AR 담당팀이었어요. AR 기반으로 너무 일찍 선두주자로 나서서 빛을 보지 못한 부서이기도 했죠. 그때 스마트 콘텐츠와 기술들 관련해서 공부를 되게 많이 했고, 직접 가까이에서 경험해 봤었단 말이에요. 지금 스마트폰을 비추면 AR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을 저는 10년 일찍 다뤄본 거죠. 최근에는 모든 기업들에서 제품에 감성적인 카피를 원해요. 특히 스마트 콘텐츠 카피 같은 경우에는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있으면서도 사람과 일상이 가까운 감성적인 카피를 쓸 수 있는 작가를 원하는데. 저는 그게 가능한 거예요. 영상이랑 스마트 콘텐츠를 잘 알면서도 에세이를 쓰는 작가니까.
2019 케이블 방송대상 다큐 대상작 <우리가(歌)> 메인 작가 이력도 인간극장에서 방송작가로 일해보지 않았다면 해볼 수 없는 작업이었고요. 유튜브 구독자 200만이 넘는 ‘토닥토닥 꼬모’라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써본 경험도 제가 서른 살에 아동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해볼 수 없는 작업이었어요. 카카오 브런치와 네이버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사용해 보고 거기에 글을 꾸준히 글을 연재해 본 경험, 그리고 2019년부터 차근차근 글쓰기 강의를 해본 경험들이 없었다면 교수 제안을 받아볼 수 없었겠죠. 꾸준히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면 동아일보에 칼럼을 연재해 볼 수도 없었겠죠.
사실 제가 걸어온 길들이 모두 완전히 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지금에 이르러 이런 역량이 되고 영향을 주는구나 느껴져 신기해요. 그러니까 경험이 최선이에요. 무엇이든 경험하고 공부하고 도전해 보면, 훗날 내가 걸어가는 길에 어떻게든 도움이 된답니다.
MZ세대가 꼭 봤으면 하는 책이 있나요?
브런치 마케터인 김키미 작가의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B매거진을 거쳐 토스 에디터로 일하는 손현 작가의 ‘글쓰기의 쓸모’를 시리즈처럼 읽어보길 바라요. ‘글쓰기의 쓸모’에는 제가 손현 작가와 나눈 글쓰기에 대한 인터뷰도 실려 있답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글쓰기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글쓰기가 자기표현의 도구가 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어요. 인플루언서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SNS에서 보면 글을 되게 잘 쓴단 말이에요. 나다움과 가치관 등 퍼스널 브랜딩에 최적화된 가장 강력한 수단이 글쓰기예요.
지난해 급격한 커리어 성장과 퍼스널 브랜딩을 고민해야 했어요. 어느 정도 자기 분야에 전문가가 되면, 그 즈음부턴 거절과 선택이 내 길을 만들어요. 나는 어떻게 나다운 길을 꾸려나가야 할까 고민할 때 큰 도움이 된 책들이었어요. ‘고수리’라는 작가. 나를 어떻게 한 줄 카피로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어떤 것들을 알릴 수 있을까, 나를 나답게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제 고민들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어요. 그래서 자기 콘텐츠를 창작하고 자기 자신을 브랜딩 하고 싶어 하는 MZ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어요.

작년에 목표하신 것 중 이룬 것들이 있으신가요? 올해 계획은?
매년 초가 되면 그 해의 모토를 정해요. 일기장에 항상 뭔가를 써놔요. 1월 1일에 올해 나는 이렇게 살겠다고 썼는데 2021년 모토가 ‘덜어내자’ 였어요! 실패했죠. (웃음)
작년에는 새로운 작업들을 시도해 보고 전문성을 쌓을 수 있었어요. 그간 꾸준히 해온 일들이 결실을 맺기도 했고요. 가장 큰 도전은 세종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가 된 일이었어요. 100명의 학생들을 관리하며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는데요. 사이버대학교이다 보니까 체계적인 교안을 제작해서 카메라 앞에서 가르치며 강의를 만들었어요.
‘말하기’가 중요한 작업이었어요. 카메라 앞에서 계속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어야 하거든요. 제 정체성은 지금까지 계속 뒤에서 글 쓰던 사람이었는데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 되면서 실수도 많이 하고, 진짜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그래서 글쓰기와 말하기 능력을 갖춘 에세이 전문가가 되었어요. 국회도서관 전문가 데이터베이스에 문화예술계 전문가로 등록되어 ‘이달의 전문가’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2015년부터 작업한 ‘토닥토닥 꼬모’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어요. 뿌듯한 성취와 성과들이 있었던 해였어요. 근데 그게 단번에 제가 이룬 건 아니고 그전부터 계속 차곡차곡했던 게 이제 이루어진 거라고 봐요. 그러려면 꾸준함도 중요하지만, 탄탄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일단 올해는 ‘하고 있는 일을 잘 하자!’가 목표입니다!
제가 다르게 질문드릴게요. 올해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게 있나요?
밤샘 작업입니다. 저만의 아침 리추얼을 시작해서 매일 읽고 쓰기로, 3년째 반복적인 루틴을 만들어서 실천 중입니다. 저는 여섯 살 쌍둥이 형제를 키우고 있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요. 다양한 기업과 협업해서 일하기도 하고, 제 글도 써야 되는 사람이고 책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나라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는데, 이 모든 일들을 지치지 않고 오래 하기 위해서는 루틴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2020년부터 리추얼과 루틴을 정말 열심히 만들었어요. 그렇게 다져서 일을 많이 하겠다! (웃음)
저는 제 일도 잘 꾸려나가고 싶지만, 글에만 매몰되지 않고 내 삶을 풍요롭게 짓고 싶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일과 삶 균형을 유지하며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체력과 마인드를 만들고 싶어요. 밤샘 작업하며 쏟아내고 무리하면서 일하고 싶지 않아요. 건강한 작업자가 되고 싶습니다.
글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내용을 봤어요. 나중에 나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는 무엇이 될 것 같나요?
장래희망은 글 쓰는 할머니입니다. 나중엔 동화를 쓰고 싶어요. 그림책이 될 수도 있고요. 저는 아동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작고 연약한 존재인 화자들이 거대한 세상과 폭력을 돌파하며 나아가는 세계에 대해 쓰고 싶어요. 상처받더라도 다시 일어나 나아갈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늘 고민하는 지점은 이거예요.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어떻게 진솔하게,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런 보편적이지만 아름다운 글도 세상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몽당한 마음으로 오래 쓰고 싶어요. 사람과 삶의 테두리를 잇는 여러 개의 점을 눈송이처럼 그려보고 싶달까요. 어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고 싶어요. 수많은 장르를 거쳐서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때 가서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따뜻한 동화책을 쓰고 싶습니다.
김희영 기자 hoo04430@asiae.co.kr